이글도 제 아버지(고인)와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제가 아마도 6살때쯤 되는것 같은데요, 그때에 워낙 큰 소동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현재까지 잘 기억을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젊은시절 군 생활하다가 참호작업중 거대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천장이 
무너지게 되자 다른 전우들이 피할 시간을 버느라고 수톤이 넘는 거대한 
참호의 천장을 가로받친 통나무를 혼자의 힘으로 버티다가 결국 그 안에 매몰
되었답니다.

그러자 아버지 덕분으로 밖으로 대피해서 목숨을 건진 전우들이 사력을 다해 
아버지는 간신히 구출이 되었는데 척추뼈가 아예 무너진 상태가 되어서 
식물인간처럼 허리밑으로는 움직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옛날에 의료 수준은 제가 일일이 열거 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겁니다.
침과 항생제를 맞으면서 수 개월동안 누워 지내다가 워낙 체력이 강하고 괴력을 
지녔던 탓인지 무너졌던 허리뼈가 어찌어찌 저절로 붙었는지 구부정한 상태로
일어나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곧바로 제대를 하였답니다.
아버지는 제대후에 10여년 간은 그럭저럭 별 문제없이 생활을 하였지만
1960대 들어서면서 등이 곱사등으로 변했고 상태가 급속도록 악화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허리가 계속 악화되자 엄청난 방사통에 시달리게 된 것이지요.
다리가 쑤시고 아파서 잠을 거의 못 주무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이 방사통을 다스리기 위해서 용하다고 소문난 광천(현재보령시?)이란 
곳으로 장배(그 당시 섬에서 오천과 대천의 장날만 오가던 배)를 타고 갔더랬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따라서 광천으로 함께 갔었지요.
그곳에서 약 1주일에서 10여일 정도 침을 맞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숙식을 하면서 지냈지요.
아마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을 했었던것 같습니다.

이렇게 침을 맞고나서 방사통이 덜 하였으므로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항구로 갔는데 그 당시 오천항인지 대천항인지 기억이 않납니다만...
우리 동네로 가는 장배가 도착해 있더군요.

한편 그 곳에서는 아이스께끼 장수가 아이스...께~에~끼~~~하면서 물감들인 물에 
사카린을 첨가하여 달달한 맛을 내는 얼음을 나무통에 담아서 팔러 다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버지한테 아이스께끼를 사달라고 별로 조르지도 않고 
그냥 "야~~~아이스께끼다!!!"

했던것 같은데 웬일인지 아버지는 그 아이스께기 장수를 불러서는 한개도 
아니고 네개나 사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아버지는 당장 옆에있는 꼬맹이(저)한테 한개를 주고
나머지 두개는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또 한개는 집에가면 꼬맹이가 또
먹고 싶어할테니 집에서 하나 더 먹게 하려고 그리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는 입에 대보시지도 않고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셨던 것이지요.

이렇게 저는 아이스께끼를 세상에 나와서 처음 맛을 봤습니다.
더구나 더운 여름이었으니 얼음은 겨울에만 있는 줄 알았던 6살짜리 꼬맹이는
신기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달달한 그 아이스께끼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었을 겁니다.

배가 출항을 하자 아버지는 객실(배밑에 있는 창고를 큰 마루처럼 개조)에 
들어가서 남은 세개의 아이스께끼를 짚으로 마치 굴비를 엮듯이 엮어서는
머리맡에 걸어두고 잠을 청하더군요.
저도 아버지가 잠을 자니까 아버지 옆에 누워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요즘에도 애기들은 아빠나 엄마가 잠을자면 같이 옆에 누워서 잘려고 하지요.
아마도 저도 그때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달게 잠들어 있었던것 같은데 갑자기 벼락치는 듯한 고함이
터졌습니다.

"워떤늠이 내 얼음(아이스께끼) 먹은겨? 당장 나와!!!"

몸도 성치않은 분이 목소리는 어찌나 크던지 잠들었던 저는 깜짝 놀라서 깨었습니다.
6살짜리 꼬마의 눈에비친 아버지의 눈은 빛이 번뜩였고 손에는 네모진 형태의
구멍이 세개가 달린 지프라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객실에 가득찬 수십명의 동네 사람들을 흩어보면서 또 한번 고함을 
쳤습니다.

"당장 뭇나와? 나한티 죽는겨 증말, 이 얼음 먹은늠 당장 나와!!!"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들고 있었던 사각의 구멍이 달린 지푸라기는 잠자기 전에
아버지 머리맡에 걸어두었던 그 아이스께끼 세개의 흔적이었습니다.
그 꼬맹이도 아버지가 들고있던 지푸라기를 만지며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얼라? 아부지 아이스께끼 증말 누가 다 먹어버렸네, 워쪈댜?"

ㅋㅋㅋ 이렇게 되자 동네 사람들은 너도나도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웅성
거리더니 어떤 아저씨는 좌중을 쭉 흩어보면서 한마디 하더군요.

"아녀, 시상이 먹을게 웁서서 아무개(제아버지 이름자)가 애들 줄라구 사농걸
훔쳐먹었단 말여, 당장 뭇나와? 아주 직여뻐릴텡께 싸게 나와뻔져."

이렇게 하면서 객실은 열받은 아버지의 콧김과 웅성거리는 동네 사람들로 온통
시끌벅적 하면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니가 훔쳐먹었냐 얼릉 나가라잉'
하는 표정들이었죠.
모두다 편하게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으므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참고로 이 배는 거의 두시간 가까이 가야 되기때문에 대부분 객실에서
잠을 청하였습니다.
이상하게도 뜨거운 여름인데 배밑은 시원하였거든요.

이렇게 소란이 거세질때쯤 배를 관리하던, 그러니까 지금의 직책으로 치자면 
갑판장쯤 되는 아저씨가 객실에 내려 왔다가 이 소란을 목격하게 되었고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 아저씨에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제 아버지가 그분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던것 같습니다.

"여봐 동상! 그러니께 말여 나가 아까 내새끼들 줄라구 말여 얼음을 니개나
샀단말여, 하나는 여기 애기헌티 주구 또 시개는 집이루 가져가서 애들 엄마랑
딸래미 줄라구 혔는디 아 글쎄 워떤늠이 나가 자는동안 냅다 훔쳐서 먹어
번졌단 말여 이늠을 꼭 잡으야 것으니께 동상이 워트게 혀봐"

그러자 그 분은 갑자기 배꼽을 잡고 바닥에 쓰러져서는 
한참이나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 웃는 모습이 하도 심해서 얼굴이 시뻘겋게 되더군요.
아버지나 동네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하다가 다 웃은 
그 아자씨가 벌떡 일어나서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지요.

"성...이 얼음은 말여 누가 훔쳐먹은게 아니라 지가 녹어뻔진겨 뭔 말인지 알어?
그러니께 성, 생각점 혀봐 즐기(겨울)는 얼음이 잔뜩 있다가 봄되먼 얼음이 
다 녹잔여 그려 않그려?
그러니께 그런것이여 이게, 시방 월마나 더운 여름여? 
얼음이니께 지가 홀랑 다 녹은겨...
성, 일루와봐봐"

하면서 그아저씨가 가리킨 곳을 보니 그곳에는 
물감이 섞여있는 물이 흥건하게 묻어 있더군요.
객실 바닥은 멍석같은 것을 깔아 놓았기 때문에 
멍석은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제서야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은 아이스께끼가 
녹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아버지는 머쓱했는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마디 하시더군요.

"아~~~따, 얼음인가 아스께낀가 허는것이 막 녹는 거구먼, 그러먼 그렇다구
진자기 말을 해주야지 그 장사늠 아주 숭헌(나쁜)늠 이구먼 그랴~~~~아..."

이말에 동네 사람들도 맞장구를 치면서 얼음은 금방 먹어야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사이 배는 도착을 했었습니다.

집에 와서 그런애기를 했더니 어머니는 그것이 녹는것은 처음 알았다고
하면서 다음에 그곳에 가면 절대로 사면 않되겠다고 맞장구를 치더군요.
그때가 모든 사람들이 순수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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