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따는 아가씨 찔레 꽃 필때

복사꽃 피는 포구 십리 포구로
임마중 가던 순이야

뱃 고동이 울때마다

열아홉 설레이는 꽃피는 가슴

강바람 산바람에 검은머리 날리며 
목화따는 아가씨


목화따는 아가씨 봄날이 갈때

복사꽃 피는 포구 십리 포구로
임마중 가던 순이야

나룻배가 올때마다 열아홉 설레이는
꽃피는 가슴

꽃바람 봄바람에 소매자락 날리며
목화따는 아가씨
(위에 내용은 과거 70년대에 라디오에서 종종 흘러 나왔던 '목화따는 아가씨'라는 노래가사 입니다.)

80년대 중반까지 시골에서는 간혹가다 목화를 심은 밭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부러 심지 않는한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목화...그리고 그 목화밭...
제가 한참 개구장이 였을 70년대에는 동네마다 목화밭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 목화를 수확하여 판매도 하고 이불 솜으로 쓰거나 누비 바지나 누비 윗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였지요.
70년대의 겨울 날씨는 거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매서웠습니다.

솜으로 두껍게 누빈 방한복을 입은 어른들도 "어이구 춥다", "어~~~따 얼어 죽것다." 

라고 외치며 종종 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나라가 가난하니 웬만큼 보리밥 먹고 사는 집의 아이들도 여기저기 기워입은 흔적들이
지금의 유명 상표처럼 덕지덕직 붙어 있었지요.
이렇게 날씨도 무지막지 하게 추웠으니 두꺼운 솜 이불과 누비옷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필수적 이였지요.


그래서 여기저기 봄만되면 목화밭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목화는 꽃이지고 몽울이가 열리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중요 먹거리 중에
하나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목화 몽울이를 따서 입에 넣고 씹으면 약간 쌉싸름 하면서도 달작지근한 맛이
느껴지는데 물기를 흠뻑 머금은 이 목화 몽울이는 먹을 것이라곤 들과 산에서
나는 풀이나 풀뿌리, 혹은 산 열매 밖에 없었던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는
참 맛난 먹을거리 였었습니다.

아이들은 약간 쉰, 즉 물기가 많이 빠져나간 몽울이는 잘 알아보았습니다.
항상 물기를 가득 머금은 목화 몽울이만 따먹곤 하였는데 행길가에 있는 목화밭의
경우 나중에 몽울이가 터져서 목화가 열리면 길에서 1미터 정도의 넓이로
그야말로 한 개 목화 나무에 목화가 한 두개 겨우 달려 있을 정도 였지요.

안쪽의 손을 않탄 목화는 한 나무에 주렁주렁 목화가 달려 있는데 길가에 있는
목화 나무에는 거의 목화가 달려 있는 경우가 없다시피 하였습니다.
이쯤되면 목화밭 주인이 "어~~~허 그놈들 참 용케도 잘 따먹었다." 라고
푸념을 하듯이 하고는 끌끌 혀를 차곤 하였지요.
주머니와 양손에 그득하게 목화 몽울이를 따서 먹었던 기억이 저편 멀리
기억 속에서 아른 거립니다.
 

 


 
Posted by 돈재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