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행권은 일본이 식민지인 조선과 일본에서 1914년부터 1945년까지 
30여년 동안 제조 발행한 화폐입니다.
조선은 1945년 독립하고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된 이후에도
조선은행권이 1949년까지 제조 발행되고 1950년 7월 22일 한국은행권이 처음 
제조 발행 될 때까지 사용되었습니다.

(1947년 6월에 발행된 무(戊)백원 입니다. 이 백원권은 조선이 독립하고 만들어짐으로 지폐 상부의 문양이 일본의
오동 문양이 아니라 무궁화 꽃을 상징 문양으로 삼았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헌데 이 조선은행권에는 1914년 처음발행된 금권 백원을 제외한 모든 권종에서
도안이 하나같이 수노인 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수노인은 일본의 7복신 중에서 장수를 뜻하는 신인데 일본의 민간신앙에서
무병장수의 상징입니다.
흔히 이 수노인상을 김윤식으로 잘 못 표기한 곳도 많은데 도안의 생김새가
김윤식과 상당히 닮아있기 때문이란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내선일체니 천황의 신민이니 하면서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조선의 모든것을
일본화 하려던 그들이 일본의 작위를 받았다고는 하나 그렇게 대단치도 않은
조선인을 화폐 도안으로 썼다고 생각한다면 그 당시 일본을 너무 모르거나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은 그야말로 진저리 쳐질만큼 흉악한 간계를 부려가며 조선을 수탈하고 
철저한 식민지배를 하였습니다.
그런 일본이 김윤식을 화폐 도안으로 썼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고
그야말로 개가 풀뜯어 먹는 소리라고 밖에는 표현 할 방법이 없겠습니다.
더군다나 김윤식은 3.1운동 당시 이용직(李容稙)과 함께 독립을 청원하는
(대일본장서 對日本長書)를 제출하여, 작위를 삭탈당하고 3년 집행유예 
선고까지 받았던 인물 입니다.

(1945년 12월 발행된 병(丙)백원 입니다. 이 지폐는 일인들이 제조한 것을 독립된 조선에서 발행만 한 것으로
일본의 상징 문양인 오동 문양이 지폐 상부에 들어가 있습니다. 병권에는 백원과 십원권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물을 일본이 화폐도안으로 삼을리도 없었거니와 설사 친일파의 우두머리
라고 하여도 일본은 절대로 화폐에 조선인을 도안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부분 화폐의 도안은 실물과 같거나 사진처럼 완벽하게 재현하는것이 전통인데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식민지인 조선에서 조선인이 사용하는 조선은행권을 일본풍의
수노인을 도안으로 채택하여 발행 하였다면 한바탕 난리가 날것은 당연 할 것으로
생각하였을 테니 일본의 수노인을 조선풍으로 적당히 맞추어 도안을 채택했을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수노인은 일본 뿐만 아니고 중국이나 조선에서도 종종 그림의 소재로 쓰던
상상속의 인물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수노인을 조선의 선비처럼 고고하게 멋까지 부려가며 그럴싸하게
조선풍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거기에다 정자관 까지 씌웠는데 자세히 보면 조선의 사대부나 학자들이 쓰던
정자관 같으나 어딘가 모르게 어설퍼 보입니다.

즉 일본풍도 아니고 조선풍도 아닌 이상스러운 정자관을 씌워놓았습니다.
그럼 왜 일본이 수노인을 아주 열심히 자신들이 망해서 쫓겨 갈때까지 변함없이
이 수노인을 고집했을까요?
조선은행권은 1원, 5원, 10원, 100원이 몽땅 수노인으로 30여년간 발행 되었는데요
이는 그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었던 일이며 대부분의 나라들은 잘살던
못살던 1914년경부터 30여년 동안 많은 화폐 
도안의 교체가 있었고 종류도 제법 됩니다.

그런데 조선만 유일하게 수노인상이 30여년 동안 
줄기차게 발행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944년 11월 발행된 갑(甲)백원, 갑권에는 백원, 십원, 오원권 등이 있습니다.)

수노인이란 무병장수를 뜻 하므로 일본이 조선을 수노인처럼 오래오래 식민지로
삼아 고혈을 짜고 빨아 먹겠다는 흉계인 것이지요.
이러한 일본의 흉악한 계략의 목적은 오직 조선을 영원한 식민지로 세세년년 
장구(長久)한 세월동안 지배하겠다는 뜻이 수노인상을 한 조선은행권에서 
그대로 들어나 있는 것입니다.

설마 이 조선은행권에 수노인상을 채택한 이유가 조선백성들이 잘먹고 잘살아서
무병장수 하라고 일본이 베풀어준 배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오직 조선을 영구히 식민 지배해서 일본배를 불리는 도구로 사용 하겠다는 흉계가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과거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민지를 거느렸던 나라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착취와
그 나라의 민족정기를 말살하는데 촛점을 맞추고 오직 노예처럼 식민지의 백성들을
다루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스페인의 만행이 그러했고 일본 역시 조선에 저지른 만행은 열거하지 않아도
지천에 널려 있어서 굳이 이곳에 적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일본이 조선 좋으라고 수노인상을 화폐도안으로 썼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인 것이지요.

                  (1938년 12월에 발행된 개(改)백원, 이 개권에는 백원, 십원, 오원, 일원권 등이 있습니다.)
경복궁의 안에다가 조선총독부를 짓고, 전국 명산의 중요한 곳에 긴 쇠말뚝을 
박아놓은 것도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고 지금도 가끔 일인들이 박아놓은 쇠말뚝이 
발견되곤 합니다.

저의 동네에서도 수십년 전에 명당급의 산이나 밭에서 종종 직경 5센치 전후의 
긴 쇠말뚝이 나왔는데 이것을 다듬어서 쇠정으로 사용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조선의 산천에 즐비하였던 고대의 무덤과 고려와 조선의 무덤들을 마구 파헤쳐서
문화재를 약탈해 갔습니다.

저의 동네에도 고려시대의 무덤과 조선시대의 무덤들이 일인들에게 도굴
당한것이 3기나 됩니다.
그 중에 고려시대 무덤은 파란색의 단지와 그릇이 지게의 바자개로 한개 가득
나왔고, 옥과 금으로 만들어진 장신구가 국 그릇에 가득 담겨져 나왔었다고
동네 어른이 오래전에 한 이야기를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조선의 중요한 건축물을 몽땅 헐어 버린것만 해도 차마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며
그 건축물 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다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국보급이 무수히
많았을 것입니다.

전쟁의 총알받이로 젊은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가고 젊은 여자들을 위안부로
데려다가 비참한 인생을 살게한 죄악은 말 할 필요도 없거니와 조선의 모든 광산이
황폐화 할 정도로 금속을 파가고 조선의 모든 쇠붙이란 쇠붙이는 몽땅 전쟁 물자 
공출이라는 더러운 핑계로 싹쓸이 해 간 것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본이 조선을 영구히 식민 지배하겠다는 흉계를 화폐에 부려 놓았음을 
우리는 이 지구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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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엽전이라고 하오 나를 모독하지 마시요,, 더보기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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