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우안띤수쥬(Tahuantinsuyu)국의 잉까(inca)들
 
1대: 망꼬 까빡(Manco Capac) 1200
2대: 씬치 로까(Sinchi Roca) 1230
3대: 죠께 쥬빤끼(LLoque Yupanqui) 1260
4대: 마이따 까빡(Mayta Capac) 1290
5대: 까빡 쥬빤끼(Capac Yupanqui)1320
6대: 잉까 로싸(Inca Roca)1350
7대: 쟈우아르 우아깍(Yahuar Huacac)1380
8대: 비라꼬차 잉까(Viracocha Inca) 1410 -1438
9대: 빠차꾸떽(Pachacutec) 1438?-1471
10대: 뚜빡 잉까 쥬빤끼(Tupac Inca Yupanqui) 1471?-1493
11대: 우아이나 까빡(Huayna Capac) 1493?-1527
12대: 니난 꾸죠치(Ninan Cuyochi) 1527
13대: 우아스까르(Huascar) 1527?1532
14대: 아따우알빠(Atahualpa) 1532?-1533
15대: 뚜빡 우아이빠(Tupac Huaypa)1533
16대: 망꼬 잉까(Manco Inca)1533 -1539
17대: 싸이리 뚜빡(Sayri Tupac)1539 -1560
18대: 띠뚜 꾸씨(Titu Cusi)1560 -1569
19대: 뚜빡 아마루(Tupac Amaru) 1569 -1572
 
잉까 이야기에 앞서서 우리나라의 모든 백과사전이나 인터넷 내용들이 스페인어와
영어가 뒤죽박죽 섞인 그야말로 이상한 이름과 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남미에서 제대로 사용되는 스페인어를 중심으로 모든걸 바로 잡아서
글을 썼습니다.

위에 잉까들의 이름도 남미용 스페인어로 모두 바꾸어 적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 본토 발음은 쌍모음과 쌍자음의 경우 'yu=유', 'yo=요', 'ya=야',와
같이 사용되는데 남미용 스페인어는 'yu=쥬', 'yo=죠', 'ya=쟈', 'll=즈' 으로 
사용 됩니다.

어차피 잉까의 모든 내용들은 스페인 정복자 들에 의해서 기록 되었고
모든것이 스페인어로 되어 있으니 글이나 언어가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야
하며 남미용으로 정확하게 글을 써야 되는데 이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마구
섞여서 인터넷에 열심히 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모두 바로 잡아야 할 문제점 들입니다.

                        (1996년에 발행된 스페인의 1000 뻬세따에 등장한 프란씨스꼬 삐싸르로)
 
1533년 스페인 사람 프란씨스꼬 삐싸르로 이 곤잘레쓰(Francisco Pizarro y Gonzalez) 는
227명의 병사를 이끌고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의 고원지대에 자리잡은 잉까 제국에 
도착 하였습니다.

그의 군대는 기병이 27명 이었고 보병이 200명 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 한것은
아니고 각 기록마다 틀리기 때문에 제가 중간쯤에 기록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잉까란 그들의 언어였던 께추아 어로 '왕'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정확하게 사용하던 나라명은 따우안띤수쥬(Tahuantinsuyu)'라고 불렀습니다.
잉까와 그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무엇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져 
스페인 사람들이 기록한 것을 그대로 흉내낼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따우안띤수쥬의 '잉까'와 우리 민족의 원류인 고조선의 '단군'과 같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단군은 고조선의 왕을 뜻 하였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군이 왕의 이름으로 알고 있으나 고조선의 '단군'은 모두
왕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고구려에서 왕을 '태왕'이라고 한것과 같은 것이지요.
따우안띤수쥬 국의 잉까가 고조선의 '단군'과 같은 뜻 이어서 이 글을 쓰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따우안띤수쥬 국은 100여년간 수많은 정복 전쟁을 벌여 주변의 크고 작은 부족들을
모두 병합시켜서 거대한 따우안띤수쥬 제국을 건설 하기에 이릅니다.

(1968년 뻬루에서 발행된 5솔레스에 제9대 잉까인 빠챠꾸떽이 도안되어 있습니다. 빠챠꾸떽은 제국을 반석위에
올려 놓는데 가장 공이 큰 잉까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꾸스꼬(Cusco)를 중심으로 4개의 제후국 비스므리한 가신부족(家臣部族)을
거느렸는데 동쪽에는 안띠수쥬(Antisuyu)를 서쪽에는 꾼띠수쥬(Kuntisuyu)를 거느리고
남쪽엔 꾸쟈수쥬 (Qullasuyu)와 북쪽의 친챠이수쥬(Chinchaysuyu)를 거느렸습니다.

이 4개 가신 부족의 중심에 잉까가 있으며 이들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존재 였습니다.
따우안띤수쥬 국의 인구는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하였으니 그 나라의 군대는 아무리
못 되어도 20만에서 30만명은 되었을 것이고 잉까가 직접 거느리고 있는 친위 군대는
일만 이상에서 많게는 수만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겨우 200여명 남짓한 스페인 군에게 잉까가 사로 잡히고 결국
나라가 망했다는 것은 현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그져 돌팔매를 사용해서 싸웠어도 간단하게 이겼을 것인데 군대가 일만 이상에다가
백성까지 합치면 수만명은 족히 되었을 당시 상황에서 완전 굴복 당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당시 따우안띤수쥬 국의 상황을 좀더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제11대 잉까인 우아이나 까박(Huayna Capac)이 죽자 12대 잉까인
니난 꾸죠치 (Ninan Cuyochi)가 보위에 올랐으나 두 아들들은 권력에
눈이멀어 내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내란을 일으 키자마자 장남인 우아스까르(Huascar)가 13대 잉까로 올랐으나
몇 년 뒤에 동생인 아따우알빠 (Atahualpa) 가 제14대 잉까로 등극 하였습니다.

                                 (뻬루에서 1969년에 발행된 1000솔레스에 도안되 마츄삑츄)

이때 삐싸르로가 200여명의 군대를 이끌고 따우안띠수쥬 국으로 들어왔고 맨 처음엔
아따우알빠도 스페인 사람들을 별 문제없이 받아 들였으나 삐싸르로와 아따우알빠의 
회담중에 스페인 병사들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잉까 아따우알빠는 삐싸르로에게
사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나라의 내전으로 군대와 국력이 소모되고 잉까의 힘이 약해졌다고 해도 최하
수천명의 군대와 수많은 백성들이 있는 곳에서 잉까가 사로잡히고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것은 따우안띤수쥬 국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총소리와 그 총구에서
뿜어지는 불 때문 이었던 것이지요.

기병대의 말 들이야 어차피 동물들이니 처음이야 좀 놀랐겠지만 그런것은 별로
중요치 않을 것입니다.
옛 날 사람들은 불과 천둥을 매우 두려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만 하여도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면 임금이 신하들에게 윤음을
내려 "과인이 덕이 부족하여 하늘이 노하였다"고 하면서 자신을 책망하곤 하였습니다.
이런 내용이 조선 왕조실록에 무수하게 나옵니다.

이런 경우로 볼 때 따우안띤수쥬 국의 잉까나 중신들이나 장군과 군대, 백성들 까지
천둥소리를 내면서 불을 뿜는 총에 놀라고 혼비백산하여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면서
모두 뿔뿔이 달아나기에 급급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단 한명의 군인도 청동검이나 청동 화살을 이용해 공격조차 못하고 혼이 빠질 정도로
놀라서 죽어라고 달아났을 테지요.
만약 아따우알빠의 장군들과 군대가 천둥이나 반개에도 눈하나 깜짝 않는 용감한
군대 였다면 삐싸르로와 그의 200여명에 병사들은 천참 만륙을 당했을 것입니다.

잉까 군대가 그져 돌팔매로 싸웠어도 200여명은 채 몇번 총을 쏘기도 전에 몽땅
전멸했을 것인데 그 200여명으로 수천명 혹은 수만명을 제압하고 잉까를 사로잡고
나라를 꿀꺽 하였으니 이처럼 어이없는 전투는 세계 역사상 전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전투가 아니라 그냥 막 학살하면서 나라를
그냥 줏어 삼켰다고 하는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 합니다.
누구하나 스페인군과 싸운 내용이 없으니 그냥 막 쓸어담은 격이지요.

특히 삐싸르로가 쉽게 따우안띤수쥬 국을 꿀꺽 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총과
내부의 매국노들 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미 아따우알빠가 반란을 일으켜서 형을 없애버리고 자신이 잉까가 되었으므로
우아스까르의 추종자들이 아따우알빠를 곱게 봤을리가 없었겠지요.

덕분에 삐싸르로는 이 잉까의 반대파에게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결국 따우안띤수쥬 국은 스페인에 점령당하여 수백년 동안 착취와 인구 말살의
처참한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1979년 뻬루에서 발행된 100솔레스에 도안된 마츄삑츄)

이런 내부의 변절자들이 꼭 따우안띤수쥬 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많은 나라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부의 변절자들에 의해 나라가 망한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우리의 고구려가 연남생의 배신으로 무너졌고, 조선이 을사오적에게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 지도층 이란 자들이 양반 상놈 따지는 동안 을사오적에 의해 나라가
왜놈들에게 통째로 넘겨 졌습니다.

베트남이 공산군과 죽을둥 살둥 싸우면서도 내부의 변절자들이 미국의 신형 무기들을
공산군에게 마구 팔아먹고 정보를 흘리는 등 개판치면서 결국 베트남은 공산군이 꿀꺽
하였지요.

지나의 장개석과 모택동이 역시 서로 박터지게 싸우는 중에 장개석의 참모들은 미국이
지원한 신형 무기들을
 모택동의 공산군에게 막 팔아 먹으면서 돈을 긇어 모았습니다.

결국 장개석은 거대한 중국을 모택동에게 빼앗기고 중국의 일부 섬에 불과했던
대만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1987년 뻬루에서 발행된 500인띠스 지폐에 뚜빡 아마루 2세 잉까가 도안되어 있습니다.)

그 후 200년이 흐른 1780년 뚜빡 아마루 2세는 따우안띤수쥬 국의 마지막 잉까로서 점령자
스페인의 200년 폭정에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는 점령자인 스페인 인들을 '금은을 숭배하는 강탈자'고
  선언하고 백성들을 모아서
반란군을 꾸려 따우안띤수쥬 국을 재건하려는 전투를 벌였으나 선진무기와 전술의 우위를
앞세운 스페인 군대에 결국은 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1781년 4월 체포되어 처형 당하고 말았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뚜빡 아마루 잉까를 죽이고,
그의 아내와 동료들을 함께 사형 시켰습니다.

혀를 뽑고 4마리 말에 묶어 팔다리를 찢고 목을 자르는 등 잔혹하게 죽였는데 뚜빡 아마루
잉까를 찢어 죽이기 위해 말에 채찍을 가했지만 말들이 사지를 찢지 못해서 잉까의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고 합니다.

따우안띤수쥬 국의 백성들이 그 모습에서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안데스 하늘을 날으는
꼰도르를 연상하는 건 당연했을 겁니다.
따우안띤수쥬 제국의 백성들은 위대한 순국의 용사 뚜빡 아마루의 영혼이 한 마리의
꼰도르(Condor)가 되었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 중 가장 큰 꼰도르가 안데스 산맥의 창공을 날며 잉까의 후손들을
굳게 지켜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1973년 꼴롬비아 에서 발행된 1뻬소에는 꼰도르가 도안되어 있습니다.)


El Condor Pasa(꼰도르는 날아가고)혹은 (꼰도르의 비상)

하늘의 주인 웅대한 꼰도르야
날 저 안데스에 있는 집으로 데려다 다오
오 웅대한 꼰도르야

내 잉까 형제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나는 그곳이 가장 그립구나
오 웅대한 꼰도르야

꾸스꼬의 중앙 광장에서 날 기다려 주렴
그래서 우리가 함께 
마츄삑츄도 우아이나 삐츄도 같이 오르자꾸나

그의 염원과 그를 기리는 인디오 들의 추모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엘 꼰도르 빠사'입니다. 
1960년 파리에서는 남미의 폴끌로레 합주단이 많았는데 그 중
로스 잉까스 (Los Incas)라는 그룹이 녹음을 하고 파리에 왔던
폴 사이먼이 이를 듣고 돌아가서 사이먼과 가펑클이 1970년
녹음을 하고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치게 됩니다.              
하지만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엘 꼰도르 빠사는 잉까의 
후손들이 부르던 노래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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