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후반 전형적인 시골 마을 이면서 섬 마을인 우리 동네에는 조그마한 전빵이
하나 있었습니다.
양조장에서 막걸리도 떼어다 팔기도 하고, 소주나 담배도 읍내에서 떼어다 팔기도 했지요.
아버지 심부름은 어쩌다가 한번 쯤 인데 대부분 담배 심부름 이였습니다.
담배 심부름을 하면 1원씩 아버지가 주셨는데 그 맛에 어린 아이는 아버지만 집에오면
"아부지 나 심부름 않시켜?" 하곤 하였습니다.
그 심부름 할 때마다 아버지가 주시는 1원은 다양 했습니다.
어느때는 1원짜리 지폐 였었고, 어느 때는 하얀색 동전, 또 어느 때는 노락색 동전 이였지요.
어린 아이는 아버지 심부름 값을 받으면 신이나서 전빵으로 달려 갑니다.
동네 전빵에 가면 어느때는 담배가 있었는데 또 어느때는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 다른 동네까지 달려 가서는 숨을 헐떡이며 담배를 사고는 꼭 빼먹지 않고 함께
사는것이 이었습니다.
"십리사탕 줘유"
하고는 일원짜리 지폐나 동전을 내어 밉니다.
그러면 전빵 주인은 십리사탕 열개를 손에 쥐어 주지요.
비록 작은 십리사탕 이지만 6여세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겐
양손으로 받아도 가득 합니다.
어린아이는 허름한 바지 주머니에 십리사탕을 옹알옹알 헤아려 넣고는
한 개를 입안에 넣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야 합니다.
요즘에는 온라인에서도 십리사탕을 파는 모양입니다. 그때는 유리병이나 반투명 플라스틱 병에 담아놓고
팔았는데 요즘은 한개씩 포장이 된 것이 보기가 좋았습니다.>
담배를 들고는 신이나서 겅충겅충 뛰거나 놀거나 하면서 어린아이는 집으로 향합니다.
이 십리사탕은 깨물어 먹지만 않으면 십리를 갈동안 단물을 빨아 먹을 수 있다고 하여서
십리사탕이라 하였고, 일원짜리가 생기면 아이들은 전빵으로 달려가서는 십리 사탕을
사곤 하였습니다.
일원에 열개씩이나 주는 십리사탕은 그 어느 과자나 사탕보다도 매혹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십리사탕을 아주 요령있게 먹을 줄 알았습니다.
반드시 빨아서만 먹어야 그 맛있는 십리사탕을 오랫동안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제 일원권, 영제 일원권, 일원 황동화, 그리고 백동화와 10환 동전을 보니 옛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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