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으로
석기시대 전투 무기들을 좀 엿볼까 합니다.
제가 석기시대 유물들을 수집하여 가지고 있는데
농기구도 제법 있지만 무기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도
사실 입니다.
무기류는 대부분 석검이나 돌도끼 및 짱돌류가 주류 입니다.
물론 박물관에 가보면 톱니 형태의 무기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무기는 좀 신식에 해당하여 신석기 말이나 청동기 초기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신석기 초기의 그아말로 호랑이가 담배도 배우기
훨씬 이전의 오랜 옛날에 무기들은 석검 아니면 돌도끼와
짱돌이 유일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짱돌은 그냥 돌맹이가 아니라 잘 다듬어서
줄을 매달수 있도록 짱돌 몸통에 홈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러한 무기는 줄을 연결하여 달려드는 적을향해 돌팔매를
강하게 하여서 적의 얼굴을 맞춘 후에, 매여진 줄을 이용하여
짱돌 무기를 다시 회수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석검은 사진에서 보이다 시피 실사용 무기라기 보다는
과시용이거나 부족의 권력자가 힘의 상징으로 가지고 다니던
일종에 상징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급할때는 적의 목이나 배를 찌르는 용도로 사용하면
큰 위력을 발휘하여 적을 절명시킬수도 있겠지만 마구 휘두르고
무기끼리 부딛치는 백병전의 싸움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즉, 석검은 매우 약하므로 돌도끼와 부딪치면 산산조각이 날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투에서는 별 효과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석기시대의 원시인들은 돌도끼와 짱돌 무기를 이용하여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를 하였을 것인데 말이죠...
그 당시엔 전투를 담당하는 병사가 별도로 있다기 보단 남자는
모두 전투가 벌어지면 곧바로 실생활에 쓰던 돌도끼나 짱돌무기를
집어들고 맞짱을 뜨는 것이 일반화 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해봅니다.
무슨 병법이 있었던 것도 아닐테고...
그러니 전쟁의 개념이 아닌 전투의 개념으로 봐야 할테고
전략이나 전술 보다는 적이 보이면 달려들어서 막 맞짱뜨고
도망가면 지칠때까지 쫓아가고...
등등으로 싸움을 했을 텐데요...
돌도끼는 튼튼한 나무로 자루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므로 그 당시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전투용 무기였을 것으로 봅니다.
돌도끼는 튼튼한 나무로 자루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므로 그 당시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전투용 무기였을 것으로 봅니다.
중국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의 첫 권인 '오제본기(五帝本記)'의 기록에 의하면...
5천년전에 치우(蚩尤)와 헌원(軒轅)의 탁록(?鹿)전투를 보면...
엄청난 병력이 동원되어 전쟁개념으로 전투를 치루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그 당시 헌원의 북방계열 부족은 대부분이 석기를 이용한 무기를 사용하였고
남방계열의 부족인 치우군은 청동기의 무기를 사용하였으므로 월등한
우세를 점하였으나 헌원의 병법 전술에 당해 우세한 병력과 무기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치우가 완패를 당하여 목과 몸이 분리가 되는 죽음을 맞이 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미 5천년 전에도 병법과 전략 및 전술을 동원한
부족 연합체의 엄청난 전쟁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유추해 볼수가 있을 텐데요...
문제는 모두가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 일뿐...
어떠한 유물이나 그 당시 내용을 담은 글이 발견이 되지
않았으므로 이렇다 저렇다 정의할 내용은 아닌듯 합니다.
하지만 이미 유물로 확인된 이집트의 2만년전의 피라밋을
본다면 우리 선조들도 최소 1만년전 까지는 기본적으로 전쟁시에
수천명은 동원된 대규모의 전투를 치루었다는 생각을 해볼수가 있겠습니다.
석기시대 유물들을 조물닥 거리다가
그져 심심풀이 땅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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