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의 어머니께서 대장암을 완전히 치료한 과정을 쓴 것입니다.
비록 글 재주가 없고 지루하더라도 읽어보면 모든 환우들과 가족에게 
큰 용기와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993년 12월 중순 쯤 날씨도 매섭게 차가운 한 겨울 이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외국생활을 몇 년 하고 귀국한 상태여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릴겸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생각으로 시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시기였습니다. 


대장암증상
어느날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에 아이 주먹만한 
멍울이 만져진다고 하시기에 만져보니 정말로 그렇더군요.
그때만해도 별스럽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며칠도 
못 되어서 너무나 통증이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해서 읍(邑) 소재지의 2차급 의원에 모시고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요도 결석 이라고 하더군요. 
의사의 처방인즉, 지어준 약을 꼭!꼭! 챙겨서 복용하고 물을 많이 
마시거나 혹은 맥주를 매일 마시고 적당히 지칠때까지 뜀박질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는데 2~3일만에 멍울도 없어지도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약이 떨어지니 또 멍울이 생기고 간간히 통증도 온다고 하여서 
또 다시 그 병원에 가서 약 타오고... 
맥주마시고 뜀박질을 하고...


여기에서 여러분들에게 꼭 당부해 드리고 싶은 말이있습니다. 
가족중에 이상한 증상을 호소하고, 조금이라도 심각한 느낌이 들면 
좋은 시설을 갖춘 대형 종합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괜히 시원찮은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가는 오진이 나와서 멀쩡한 사람 
생명을 잃게 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꼭 좋은 시설과 실력좋은 의사들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도록 신신당부 드립니다.


이렇게 50여일 가까이 허송세월을 보냈지요.
그 때 쯤에 이르러서는 어머니 한테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 하더군요.
우선 식사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었는데요, 어떠한 경우에도 꼭 한 그릇씩
비우시던 어머니였는데 매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 째로는 오른쪽 옆구리의 통증이 엄청나게 심해서 얼굴이 하얗게 변할정도로
아파 하는 것이었고, 앙치질을 할 때에 구토 증세가 심하게 나왔습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다가 순간 뒷 통수에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적인
느낌이 오더군요. 


사람이 유심히 살피면 본인도 모르는 직감이라는 것이 발생되는데 어머니의 
모습이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혹시 심각한 병이 아닐까?'하는 마음에 곧 바로 가까운 시(市)에 위치한 
3차 의료원 즉,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하루가 다 되도록 
도무지 확진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그 시내에서 가장 검진을 잘 한다는 의원급의 방사선 전문 검사 병원으로 
종합병원에서 받은 의사의 소견서와 함께 5시가 다 되어서 병원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아침 9시부터 하루종일 병원에서 별의별 검사를 다했어도 확진이 않 나와서 
몹시 초조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방사선 병원에서는 관장을 실시하여 곧바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였습니다.
아마도 종합병원에서 아무것도 못 알아 내었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내시경 
검사를 택한 듯 합니다. 


한 40여분이 흘렀을까? 초죽음이 되어서 어머니께서 나오시고 의사의 표정과 
간호원의 얼굴에서 보통 심각한게 아닌걸 직감적으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목은 타기만 하고 어머니께서는 아예 드러누워서 신음 소리를 내고...휴~~~

그로부터 약 10여분이 흐른 후 의사가 어머니와 저를 부르더군요. 
검사는 제대로 하였고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는데 어머니와 함께 
나가는 저를 불러세우고 어머니만 내 보낸후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멈칫 멈칫 하던 
의사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직 확신은 할 수는 없지만 대장암인것 같습니다. 
내일다시 오셔서 정밀 검진을 받도록 하시지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않나 더군요. 
놀래서 눈만 껌뻑 거리는 저에게 의사는 확실한 것은 내일 봐야 하니까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라고 합니다.

의사에게 상태를 물으니 만약 대장암이 확실하다면 말기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시내에 있는 여관에서 여장을 풀고 어머니를 재워드렸는데 왜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 어머니께 화냈던 일, 속상하게 했던 일, 시시콜콜한 잘 못 들이 영화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 갔습니다. 

잠이 올리가 없지요. 

소주를 한병 사다 마셔도 취하지 않고 정신만 멀쩡하고... 
두병을 마셔도 마찬가지고...
세병...
네병...
술이 전혀 취하지 않고 정신만 자꾸 명료해져서 더욱 힘들고 슬펐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와 저만 덩그러니 버려져 있고...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나 사막에서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업고있는 듯한 그 막막함...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수가 없습니다.

형제들의 무관심...
위로의 말 한마디 없었던 친구들...
그 위기를 겪고난 후 저는 주변의 아는 사람들 모조리 정리를 해 버렸습니다. 


다음날 검사받기 위해 다시 찾았고 역시 검사결과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 암의 전문용어로는 상행결장 신생물 이라더군요.
대장암은 확실하고 현재 위험해진 상태라고 합니다. 
4기 중반으로 진입한 단계이고 서둘지 않으면 매우 위험 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의사에게 묻기를 "만약 치료가 잘 되어서 퇴원하면 완치는 될 수 있느냐고?"
의사가 대답하기를 "잘 치료를 하면 4년에서 5년 생존율은 나올겁니다." 라는
대답을 뒤로하고 임시 거처로 정한 인천의 누나 집에서 하루 보내고 다음 날 
서울에 있는 원자력 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던 것인데 그 곳에서는 5시간 
기다려서 7분 정도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을 뿐, 얻은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병실이 없어서 40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어머니는 그냥 죽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제가 의사에게 묻기를 "그럼 그냥 기다리다가 죽으라는 말입니까?"하고 물으니
그 잘나신 의사놈이 말하길... 
"기다리는 모든 환자들도 댁의 어머니와 같은 상태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대장암에 권위가 있는 다른 병원이나 의사에게 소견서를 써주고
즉시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었어야 마땅한 일인데 그렇게 
해주기는 커녕 무조건 기다리라는 그 쓰레기가 의사란 것이 믿기지 않았지요.
원자력 병원 가지마세요.
쓰레기 의사들만 있는 곳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 날 누나의 의견대로 인천에 있는 중앙길병원(현 가천의대길병원)에 
응급실로 들어갔고, 즉시 입원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매우 위급한 환자라는 것이 응급실 담당 전문의에 소견이었습니다.

병실은 어땠을까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큰 병원에는 비상용으로 몇개의 병실을 비워둔다고 합니다.
바로 제 어머니 같은 위급한 환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더군요.
제 어머니도 그 비상용 병실로 입원이 되었던 것이지요.

모든 검사가 매우 빠르게 진행이 되어서 3일만에 조직 검사 까지 마치고 
수술에 들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좋은 병원과 의사들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당시 암으로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줄줄이 대기중 이었는데 어머니께서 
15명 이상을 젖히고 앞으로 당겨져서 수술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면서 자꾸 눈물이 흘러 동의서에 뚝!뚝!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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