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선의 운명이여...

조선 침략군은 다음과 같이 편제가 되었습니다.

선봉 부대는 9개 군단으로 이루어 졌으며 
제1차 침략군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군 : 고니시 유키나카는       19000여명을 이끌었고
제2군 : 가토 키요마사는          21000여명을 이끌었으며
제3군 : 구로다 나카마사는       12000여명을 이끌었고
제4군 ; 시마즈 요시히로는       15000여명을 이끌었으며
제5군 :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25000여명을 이끌었고
제6군 :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16000여명을 이끌었으며
제7군 : 모리 테루모도는          30000여명을 이끌었고
제8군 : 우키다 히데이에는       10000여명을 이끌었으며
제9군 ; 하시바 히데카츠는       12000여명을 이끌고 조선을
향해 진격을 시작 하였습니다.

이렇게 1군에서 9군까지는 15만이 넘었으며 그 뒤로 2군
15만여 명이 연속해서 진격해 들어가는 방법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군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한편 부산진성(釜山鎭城)의 첨절제사 였던 정발(鄭撥)장군은
1592년 4월12일에 부산진의 속영이었던 절영도(현재의 영도)를
순찰 하던 중, 앞 바다를 가득히 덮으며 까맣게 몰려오는 수백여
척의 전함들을 발견하자 왜군의 대대적인 침략임을 간파하고
즉시 부산진성내로 돌아와서 약 700백여 명의 병력 동원령을
내리고 전투태세로 돌입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부산진의 새벽안개 속에서 서서히 들어나기 시작하는 유키나가의
제 1군 1만 9천여 명이 부산포에 상륙을 마치고 나자 그 위의
부산진 성에서 왜군의 모습을 지켜보던 정발 장군은 순간적으로

'아!!!
조선이 위험하구나'를 외치며 자신이 지휘하는 700여명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짐작하고, 성내의 모든 주민들에게 죽음으로
맞서라는 통문을 돌리기에 이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발 장군의 통문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뭐든지 손에 들고서 집에서 뛰쳐 나오기
시작 하였습니다.

유키나가는 부산진성의 성루에서 노인 장수가 휜 수염을 날리며
버티고 있음을 보게되자 그 기개가 장하게 느껴지므로 죽이기엔
아깝다 생각돠어 항복하고 길을 열라고 설득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발 장군은 '장수된 자가 어찌 적에게 길을 내어줄수 있겠느냐'
결사항전 할 것임을 분명하게 왜장에게 전달 하였습니다.

설득이 불가능 하다고 여긴 유키나가는 조선 장수들이 
이와 같다면 자신이 한양으로 진격하는데 매우 난관이 많을 것이라 여기고
조선의 장군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 끔찍한 명령을 전군에게 내리게 됩니다.

"제군들은 듣거라!!!
앞에 보이는 성을 즉시 공략하되, 살아있는 것은 
개미 한 마리 남기지 말고 모도리 죽여라"

이런 명령을 받은 왜군은 벌떼같이 부산진성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성벽이 전쟁을 대비하여 높이지 않았기에 얕으막한 부산진성벽은
순식간에 적에게 내주었으며 성 안에서는 아비규환과 같은 참혹한
살육이 벌어졌습니다.

정발 장군과 성내의 모든 백성들이 사력을 다해 항전하였으나
너무나 숫자적으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왜군의 백병전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들과 부녀자들은 기와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왓장을 던지며
싸웠으며 이들에게 왜군들은 조총을 사용하여 살육하였습니다.

이렇게 처절한 전투를 치루던 부산진성으로 새까맣게 진격해
오던 대부대가 또 있었으니 제 2군인 가토키요마사가 이끄는
2만천여 명의 병력이었습니다.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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