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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6 성스러운 영웅 이순신 장군 5부 1
5월 7일쯤에는 경상 우수영의 관할인 옥포, 승포를 나카마사의
3군이 쳐들어오자 그달 18일에는 경상 관찰사 김수로 부터 출전
명령을 받은 원균은 군대와 전함을 정비하여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를 하였으나 이미 늦어버린 상황 이었습니다.

비록 경상 우수영도 좌수영과 같이 편제상으로는 전함이 75척이고
병력이 1만 2천여 명 이었으나 경상 우수사로 발령받은 원균은
이순신 장군처럼 재빠르게 병력과 무기, 전함을 정비하지 못하고
그 짧은 시간을 낭비하던 중,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원균은 적에게 군량미와 화살 한개라도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모든 군사적인 문서를 불태워 버리고 각종 무기와 군량미 및 전함을
자침케 하여 바다속에 가라앉혀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1척의 판옥선에 수군과 무기, 군량미 등을 싣고는 
경상우수영을 떠나 사천(四川)쪽으로 피신 하였습니다.

한편 이순신 장군은 4월 11일에 정걸과 나대용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거북선의 진수식이 거행되었으며 그동안 철저하게
훈련받은 전함들을 모두 이끌고 바다로 나가 일제히 함포를
쏘며 전술대로 훈련을 실시 하였습니다.

이렇게 거북선이 만들어진 다음 날에 왜군이 부산으로
침략해 들어온 것은 참으로 묘한 역사적인 우연이라 할 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만반의 전투 준비가 끝난 이순신 장군은 조정으로 부터
출전 명령이 떨어질 때 까지는 전라도 권역을 단 한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왕권 강화를 이유로 모든 장수들은 병력을 함부로 이동 할 수가
없도록 한 조선 시대의 군대 이동에 관한 법률이 나라 망하게 할 수도
있었음을 엿볼수가 있습니다.

물론 명목이야 왕권 강화라고 할수가 있겠지만 실제 적으로는
군사 쿠데타를 염려하여 왕명이 있어야 군대가 이동 하도록
하였던 것인데 이런 법령으로 인하여 조선은 왜군에게 점점 
초토화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쟁이 발발된 후, 27일이나 이순신 장군의 병력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왜군들이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진격을 허용하게된 크나큰 실책으로 볼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왜군이 침략 하자마자 이순신 장군의 군대가 신속히
작전을 펼칠수가 있었다면 전쟁은 초기부터 왜군이 아예
한양으로 진격하지 못하게 되는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역사에는 가정이란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는 합니다만...
임진왜란은 사실 조선 왕의 왕권 강화라는 허울좋은 법령 
때문에 전 국토가 전쟁의 참화를 겪고, 수만명의 백성들이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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