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말이죠...
원균이 각 지휘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매우 빠르게 내렸다면 어떠했을까요?

"각 관아의 수령들은 지금즉시 보유한 모든 군량미와 
무기고의 모든 무기들을 판옥선에 싣고서, 수하 병사들을 모두 태우고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 전라좌수영이나 우수영으로 퇴각하라...
도중에 왜군 전함을 만났을 경우 이길 수 있다고 판단되면 
결사항전하여 싸워 물리칠 것이나, 승세가 판가름 않되거나 
싸울수가 없다면 최대한 피하도록 하고...
왜군 전함에게 붙잡힐 것 같으면 반드시 자폭하라..."

이런 명령을 받은 대부분 원균의 수하 장수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고 
명령을 듣지 않고 도망간 자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렇게만 원균이 해주었다면 
전세는 초반부터 엄청나게 달라졌을 겁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자신이 맡고있는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감마마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을 테지만, 옛부터 왕의 명을 받지않고 
독자적인 행위를 했을 때는 실수를 하면 그대로 참형을 당했지만 
그 결과가 나라의 운명을 안전케 한 것이라면 반드시 죽임은 면하고 
때로는 가벼운 징계 정도로만 죄를 묻는 경우도 많았음을 볼 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우국충정이 넘치는 장수다운 장수였다면 
훗 날 왕에게 참형을 당할지라도 자신의 군세를 그대로 보존하여 
나라에 큰 도움이 되는 쪽을 택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원균이 장수의 자격도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 둘째는...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을 아예 완전히 절단을 낸 경우입니다. 
이때만 해도 우리 조선수군은 이순신 장군께서 뜬눈으로 뒤척이며 
고심을 하고, 걱정을 하면서 이룩해 놓은 막강 무적 함대를 원균이가
한방에 몰살을 시켜버린 것입니다.

설사 조정과 도원수 권율이 강압적으로 출전케 하였다고는 하지만
5명의 수군절도사를 이끄는 5함대 통합 사령관이나 되는 자가
200 여척이 넘는 전함과 수만명의 수군을 몰살시킨 죄는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는 것입니다.

선조실록에 몇몇 되도 못한 문신들이(심지어 유성룡도 포함) 
원균은 돌격을 매우 용감하게 했느니, 막상 전투에 임하면 용장이 된다느니 하면서 
선조의 비위를 맞추는 구절이 조금 보인다고 하는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들 말대로 원균이 그토록 전투에 임하면 용장으로 변하고 
돌격을 무지 잘하는 맹장이라면 아무리 왜군의 대(大)전함 함대의
함정에 빠져서 기습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토록 돌격을 잘하는 
맹장이라면 당연히 전군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모든 장수들과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죽을힘으로 싸웠을 것이고, 이렇게 되었다면 
조선 수군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겠지만 아마도 왜적 전함들은 
재기 불능의 매우 큰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군 전함은 손실을 거의 입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조선수군이 왜군의 기습을 당했다고는 하여도 도대체 어떤일이 
있었길래 조선 수군은 거의 전멸을 당하였고, 왜군은 손실이 없다시피 
하였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즉 조선수군이 전멸을 했든, 전멸을 면하였든, 원균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처럼 죽기로 각오하고 왜군 전함과 
맞서 싸웠다면 왜군 전함도 상당히 손실을 입어 그 세력이 매우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왜?
똑같은 수군 제독을 하였는데 이순신 장군은 24전 전승을 거두었고
원균은 조선의 무적함대를 몽땅 전멸을 시켰는지 말이죠.

하지만 결과는 육군 장수도 아닌 수군 장수가 뭍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몰라도 
뭍으로 달아났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고, 민망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혹여 알까 두렵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원균 옹호론은 
참으로 쓸데없는 논쟁이며 재론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원균이가 조선수군의 대함대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
도망치다가 왜군에게 참살을 당했음에도 1등공신이 된 연유가 있습니다.

원균이 일등공신이 된 이유는 천거에 대한 연좌제 때문 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내치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함으로써 
삼도수군이 일시에 무너진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인 선조만은 
원균이 죽고난 뒤에도 계속 원균을 두호하며 "원균은 지혜와 용맹을 갖춘 무인"이라고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조가 그런 무리한 오기를 부린 까닭은 
당시 조선사회의 관료문화와 제도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시대는 인물 천거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엄중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천거를 받아 관직에 임명된 자가 죄를 범할 경우엔 
그를 천거한 인물에게도 연좌제를 적용하여 처벌하도록 
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던 사회였었습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吏典 薦擧

그렇기 때문에 선조는 끝까지 "내가 사람을 잘못 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선조의 무리한 보신책은 전쟁이 끝난후에 공신도감에서 
공신들을 선정할 때도 이어져서,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를 억누르고 
원균을 일등공신으로 책정하도록 강요하여 결국 관철 시켰습니다.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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