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 벽화들을 유심히 보노라면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의 그림 입니다.
왜 죽은 사람의 묘마다 빠지지 않고 북두칠성을
그려 넣은 것일까?, 고구려 사람들에게 있어서
북두칠성은 시간의 신이자 생사의 신으로 여겼기
때문 입니다.
북두칠성의 끝 부분을 두병(斗柄)이라 하였는데
이 두병은 상고시대 부터 하늘의 시침(時針)이라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사를 관장하는 북두칠성의 시간과
그 영험함은 결국 우리 민족의 생과사를 주관하는 신들이
좌정해 계시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 모든 무덤마다 북두칠성을
그려 넣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늘의 시계인 북두칠성은 인간의 시간이 끝이 나면
다시 돌아가는 영혼의 고향으로 여겼으며 죽음에 이르러 영혼이
북두칠성으로 제대로 찾아 가도록 하기 위해서 죽은자의 관에는
칠성판을 깔아서 장사 지냈던 것입니다.
이 칠성판의 원조는 당연히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남겨져 있는
북두칠성의 그림에서 찾을수가 있을 것이며 고구려 사람들도
사람이 죽으면 칠성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칠성별을 묘의 천장에
그려 넣어야 된다고 믿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이 북두칠성의 시작은 고구려 훨씬 이전 시대인
고조선과 그 이전 시대인 석기시대의 고인돌 에서도 너무도
뚜렷하고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남겨진 수많은 고인돌에는 북두칠성이
아주 많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생과사를 주관하는 시계인 북두칠성은 우리 민족이
신성시 해 왓으며, 그 칠성신앙은 곧 영혼의 고향은 바로 북두칠성이라
여기게 되었고, 조선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의 60년대 70년대 까지만
하여도 죽은자의 관 속에는 칠성판을 반드시 깔아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 '돌아갔다'는 의미는 바로 왔던데로 다시 갔다는 것이니
그 왔던데가 바로 북두칠성이고 인간의 시간이 다 끝난 순간
그 인간의 영혼은 다시 북두칠성으로 돌아가서 머물다가 새로운
인간의 시간을 부여받아 남두육성으로 건너가서 삼신 할미의
점지를 받고 인간세상에 태어난다는 이러한 칠성신앙은 진정으로
우리 고유의 신앙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이나 요즘이나 어느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인데, 이 '돌아가셨다'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새삼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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