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순신 장군 하면, 오로지 왜군 전함들을 박살내어
조선의 바다를 굳건하게 지켜내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전쟁을 치루는 와중에서도
다방면에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여 뛰어난 ceo 적인
능력까지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둔전을 개간하여 식량을 확보 한것은
어떠한 일 보다도 중요하다 할 만 합니다.
주변의 백성들로 하여금 둔전을 대량으로 개척하여 경작하게 함으로서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게 하였고, 또한 수만은 수군들의 군량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미 조정은 보따리 사들고 도망가기에 바빳으므로 조정에서
군량미나 무기를 조달 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스스로 자급자족 하기위해 둔전을 개간토록 하여
7년의 전쟁동안 이순신 장군이 돌보는 백성들은 물론 수군들 또한
무난하게 국난을 이겨낼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어디 그 뿐 인가요?
조정이 한양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걸핏하면 이순신 장군에게
식량을 보내달라고 입맛을 '쩝! 쩝!' 다시면서 손을 벌리곤 하였지요.
이순신 장군은 스스로 돈을 마련하여 무기만들 재료를 구입하고
전함 수리에 보태기 위해 전쟁을 치루면서 틈이 날 때마다
상업에도 종사 하여야 했습니다.
난중일기에 보면 시간이 날때마다 군사들로 하여금 미역을 채취하여
건조해서 팔았고, 염전을 운영하여 소금을 팔아서 벌어들인 돈으로
전쟁비용을 충당한 기록이 보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시절에는 5개함대를 이끌다 보니 더욱 많은 비용이
필요하였기에 재정 문제로 고민하던 이순신 장군의 한숨이 많았을 듯 싶습니다.
그런데도 이순신 장군은 한양의 임금에게 자주 각종 농산물과 옷감 및
소금이나 해산물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리더쉽 중에는
위민(爲民)부분에서 더욱 돋보였습니다.
백성을 위함에 있어서 내 가족처럼 대하고 아끼니
백성들은 이순신 장군을 어버이 처럼 따랐다는
후대의 기록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로 생각 됩니다.
특히 전쟁중에 백성들이 피난오면 살집과 양식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난중일기에 보이므로 이순신 장군은 위민(爲民)부분에 있어서도
참으로 뛰어난 목민관(牧民官) 이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어디 그 뿐 이겠습니까?
24전 24 전승을 거둔 경우는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전술을 사용하였는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의 뇌 구조로는
이해가 불가능 하기만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장량이나 공명도 하수로 보일 정도이며
육지 전투에서나 가능한 진법을 해전에서 적용한 것도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뛰어난 전술이지요.
이런 인재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고, 병조판서에 오르고
나중에 영의정까지 올라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였다면
조선 역사상 가장 행복한 태평성대가 이루어 졌을 것이라고 잠시
몽상에 잠겨 봅니다만...
선조와 중앙 관료(官僚)들이 과연 그리 했을 것이라고는
반드시, 절대로 생각되지 않습니다.'이순신 장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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