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전투방법은 전함에 전격적으로 함포를 설치하여
이를 이용한 원거리, 중거리, 근거리 순으로 순차적으로 가하는 타격 전술 이였습니다.
첫째: 충무공이 전함에 함포를 설치한 까닭으로 왜군은 오랜 기간 동안의
내전으로 단련된 고도의 단병접전의 고수들로 이루어 졌다는 것.
둘째: 왜군은 조총이라는 신무기가 있는데 조선의 휴대용 소형 화포와
비교도 않될만큼 사거리가 길고 정확한 조준사격이 가능하다는 점.
셋째: 이미 이순신 장군 훨씬 이전부터 조선의 판옥선에는 화포가 장착되어
사용되었으나 오랫동안 제대로 된 수군 유지에 대한 전략과 전술에 대한
뛰어난 인물이 없었으므로 화포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왔었고, 이 전함
화포술은 고려 최무선에 의해서 시작되어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는 활발하게
사용되었으나 그 후로 점차 사용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
이러한 점들을 간파한 이순신 장군은 왜국의 정세를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
최대한 정확 하게 파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런 과정에서 왜군이
만약 대규모로 침공 해온다면 조선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 차렸던 것입니다.
해서 판옥선에 화포를 장착하여 조총의 사거리 밖에서
3단의 포격전술을 마련하였던 것이지요.
결국 이러한 원거리와 중거리, 근거리 포격을 더욱
극대화 시킨것은 여러가지 진법을 동원한 해전 전술이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적과 전투가 벌어지면 각 판옥선의 좌우측에 설치된
화포를 일제히 발포 하여 적을 원거리에서 부터 제압하며 돌격하였을 것입니다.
천자와 지자총통에는 대장군전과 장군전을 장착하여 발포하고
현자와 황자총통에는 차대전(次大箭)과 피령전(皮翎箭)을 장착하여
발포하였는데 이 네가지의 무기는 모두 사거리가 1킬로미터 전후에
이르렀으므로 원거리에서부터 포격을 하였습니다.
즉, 한척의 판옥선에서 발사되는 전(箭)들은 모두 네종류로서 대장군전 1개,
장군전 아마도 2개정도, 나머지는 현자에서 차대전(次大箭)4개 가량이고
황자에서 피령전이 3개로 총10개정도가 발사 되는데 만약 20척의 판옥선에서
발사된 전(箭)들은 최하 200여개씩 연속으로 적의 전함을 향해 날아갔을 것입니다.
천자 1문, 지자2문, 현자4문, 황자3문 한쪽당 10문이며 판옥선 1척에는
20문의 화포를 장착했다는 가정하에서 설정 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한방만 맞으면 침몰되는 대장군전과 장군전, 그리고
차대전이 70발이고 불화살이 된 피령전이 130발이나 되었으니,
그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차대전이 70발이고 불화살이 된 피령전이 130발이나 되었으니,
그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피령전은 그냥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불화살용으로 발사하여
적의 전함을 불태우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적의 전함을 불태우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판옥선당 선미 좌우에는 천자총통을 1개씩 설치하고, 그 외에는
지자총통을 2개를 설치하고, 나머지는 현자를 4개, 황자총통을 3개 설치를
하였을 것으로 가정 하였습니다.
판옥선에 천자와 지자총통이 적은 이유는 화약도 많이 들면서 반동이 엄청나고
화포를 이용한 해전자체가 명중률이 낮은 원거리보다는 명중률이 높은 중거리와
근거리에서 더 효과가 크므로 현자와 황자를 주력무기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천자총통을 선미좌우에 설치한 까닭은 모든 포들이 일제히 발포한 후 즉시
반대편에 있는 화포를 적함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오른쪽, 왼쪽으로 즉시즉시
방향을 바꿔야 되는데, 판옥선의 특징이 제자리에서 회전이 가능한 만큼 선미에 있는
천자총통의 반동력을 이용하여 키와 노를 조금만 사용해도 순식간에 반대편의
화포를 적함쪽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천자총통은 화약이 많이 드는 만큼 위력이 강해서 포격의 반동 또한 엄청났을 것입니다.
선저가 편평한 판옥선은 선미의 천자총통이 한번 발사되는 순간에 판옥선을 순식간에
절반이나 회전 시켰을 것입니다.
즉 좌측의 모든 화포가 일제히 발포를 하면 약간 한템포 느리게 천자총통을 발포하여
선수가 왼쪽으로 돌게하고 선미가 오른쪽으로 돌게하는 것입니다.
이때 발포가 끝난 좌측 포대는 즉시 장전에 들어가고, 우측 포대는
사격위치에 서게 되는 원리인 것이지요.
1998년 9월 16일 전국 국궁무예대축제 때,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발사된 천자총통의 대장군전은 500미터를 날아가서
화강암 석축을 거의 50cm나 뚫고 들어가 박혔던 사실로도
천자총통의 위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이렇게 원거리에서 전(箭)의 포격이 몇 번 이루어지다보면
적 전함과의 거리는 어느 덧, 600-700미터 거리로 좁혀질 것이고
이때 부터는 전(箭)들은 거두고 포알의 중거리 포격이 시작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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