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막강 무적 육군전력을 지닌채로 왜국 천하를 통일하면서
부려먹은 심복들에게 영지를 주어야만 했으나 부족한 땅 덩어리와 그에 따라
불만이 높아진 수하 장수들에게 새로운 충성도를 높여줄 명분을 찾기에 
고심하게 됩니다.

그 명분이 바로 조선국과 명국을 쳐서 동아시아를 '꿀꺽!' 하겠다는 
야심을 표출하는 원인으로 작용을 하게 됩니다.

수십년 동안 전투를 치루면서 왜군들은 그야말로 전투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그 숫자 또한 상상을 초월해서 도요토미의 심복 부대와
비심복(도쿠가와 이에야스)부대의 숫자를 합하면 무려 수십만명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전투력을 지닌채로 독기를 품고 있는 부대들을 그대로 두었다간
반란이 일어날수도 있는 것이니 만큼, 왜장들이 지닌 힘을 약화시킬 필요가
절실 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상국으로 여기던 조선과 그 조선의 빽으로
버티고 있는 명나라를 쳐서 자신의 대륙정벌의 꿈을 실현 시킴과 동시에
왜장들의 힘을 대폭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실행시키기에 이르니,
이것이 바로 임진년 1592년 음력 4월 13일에 정명가도(征明假道)란 명분을
내세우며 일으킨 임진왜란이 되는 것입니다.
 


왜국의 육군 전력은 그 주력인 조총부대 입니다.
왜군 조총부대의 그 전술은 현대에 적용해도 될만큼 뛰어났는데
약 1조에서 3-4조에 이르는 편제로 되어 있어서 1조가 맨 앞에서 사격을 하고나면
즉시 후미로 후퇴하고 2조에 대기하던 부대가 앞으로 나오면서 즉시 사격을 가하며
뒤로 돌아간 조는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게 됩니다.

이렇게 1조에서 3-4조에 이르는 조총부대는 쉴새없이 연속 사격이 가능해서
조선군이나 명군은 50m반경 내에서는 왜군의 조총부대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야 했으며, 이렇게 연속된 조총 사격은 어떠한 대부대와의 접전에서도
순식간에 상대를 무력화 시키기에 충분하였으며 전열이 무너진 적진을 
백병전에 고수들인 왜군이 일본도를 휘두르며 달려드니, 그야말로 조선은
파죽지세로 연전연패를 당하면서 선조가 명나라 입구까지 도망쳐야 되는
참으로 민망한 사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조선 육군이 형편없는 오합지졸로 표현을 하였는데
이는 역사의 무지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 당시 조선 육군은 편전이라고 하는 왜군의 조총보다도 뛰어난
사거리와 살상력을 지닌 소형 화살을 사용하는 부대가 모든 육군에
배속되어 있었으며, 이 편전은 명나라에서도 탐을 내던 무기였습니다.
 


신기전과 함께 뛰어난 무기로 평가받던 편전만큼은 매우 무서운
무기로 인식이 되던 때 였었는데, 편전을 잘쏘는 사수들은 활과
편전을 동시에 쏠수 있어서 그 전투력이 매우 높았다고 하며, 또한
북방쪽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 육군은 여진족을 수없이 공격하고
방비 하면서 전투력도 무시못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왜군의 조총부대는 그 운영을 매우 뛰어나게 잘 하였으므로
조선의 편전 부대를 순식간에 궤멸 시켰는데, 이는 바로 조총부대의
연속 사격을 가능케 한 사격술에 조선군의 편전 부대가 살을 메기는
그 짧은 수초 사이에 조총을 쏘아 대므로 결국 편전부대는 대응조차
제대로 못해보고 전멸을 당하면서 조선군은 무너져 갔던 것입니다.

특히 백병전에서도 조선군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지만 왜군의 전투력이
더욱 뛰어나서 맞붙었다 하면 조선군은 맥을 못추고 쓰러져 갔습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왜군들이 판옥선에 기어오르지 못 하도록
원거리, 근거리용 화포를 잘 할용하면서 왜군 전함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 전술로 전투를 한 결과 전승을 할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본격적인 해전을 시작하기전에 왜군의 전투력을
실험하기 위해서 왜군을 생포해다가 조선군의 부장급과 일대일로 목검
대결을 벌여본 결과 조선의 부장급 장수가 왜군의 일개 병사에게
밀리는 것을 보고는 왜군과 어떤 방법으로 바다에서 전투를 치룰지 
이미 결정을 지었던 바...

바로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화포술을 전투에 적극적으로 적용함으로서
그렇게 막강 무적이었던 왜군들은 이순신 장군과 바다에서 전투를 벌이기만
하면 연전연패를 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화포술의 위력을 절실하게 경험한 왜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군의 전함에도 화포를 장착했지만 왜군의 전함은 엄청난 반동을 일으키는
화포를 전함에 장착 했다간 배가 몽땅 절딴이 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튼튼한 전함을 만들지 못한 것을 후회를 하였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 였습니다.
 


왜군의 전함은 매우 속도가 빠르게 제작이 되었으며 속전속결로 조선수군의
판옥선에 올라서 백병전으로 끝장을 내는 전술을 선택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으로
인하여 그 전술은 무용지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왜군은 자신들의 함선에 화포를 장착하지 못하고 큰 기둥에
화포를 매단 우스꽝 스러운 모습이 왜군에 의해서 그려진 전투 그림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장 큰 실책을 범한 것은 육군 전력만큼
해군 전력에 공을들이지 않았던 것이고, 조선의 해군 전력을
미쳐 간파하지 못한 점 입니다.

만약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강력한 해군 전력까지 지닌채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 전력을 모두 간파하고, 조선과 명나라로 진격했더라면???
정말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전쟁의 참화에 초토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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