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포해전에서 어깨에 부상을 입은 이순신 장군은 
본영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

왜군의 총사령부가 설치되어 있었던 한양에서는 
왜장들의 긴급한 논의가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침략군의 총사령관인 우키다 히데이에는 20세의 새파란 
애송이 장수였지만 히데요시 양녀의 사위이자 양자로서
침략군의 총사령관으로 조선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지요.

원래 왜군의 조선 침략 전술은 육군이 최대한 신속하게 조선군을
격파하고 한양으로 진군하여 선조를 사로잡거나 참살하는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군은 가장 가벼운 보급품만 챙긴채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진군만 했을 뿐...
보급 문제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강력한 육군만큼이나 해군도 강력하다고 믿고 있었던 히데요시나
그의 장수들도 역시 자신들의 해군은 천하제일이기 때문에 
천천히 육군을 따라서 보급품을 가득싣고 와서 필요 할 때마다
군량미와 화약, 탄환등을 쉴새없이 보급을 해줄 것이라 철저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어느 나라의 해군보다 자신 있었던 그들의 해군이 생전
처음들어보는 조선의 수군장수 이순신에 의해 철저하게 격파당하고
남해와 서해의 해상로가 완전히 차단 당하자 아연실색 하면서 분주히
대책마련에 전전긍긍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에 침략군 총사령관 히데이에는 한양에 머물던 해군 대장 몇 명을
긴급히 부산으로 내려보내고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3만의 육군을 
진군시켜 이순신 장군의 좌수영이 있는 전라도를 치도록 명령 하였습니다.
 

그와함께 왜군 함대를 새롭게 편성하여 제 1군은 야키자카 야스하루가
맡아 70여척의 전함으로 구성시키고, 제 2군은 구키 요시타카로 하여금
42척의 전함과 기함으로는 니혼마루(日本丸)를 주었는데 니혼마루는
길이가 70미터이고 노가 120개나 달린 왜국 최고의 큰 전함으로 이렇게
큰 전함이 부산에 와 있었던 이유는 히데요시가 조선으로 올때 타려고
준비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워낙 큰 전함이기 때문에 왜군이 부산으로 쳐들어 올때 대량 수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산에 들어와 있었던 것인데 이 니혼마루를 요시타카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제 3군은 가토 요시아키가 맡아서 함선 수십척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야스하루와 요시타카, 요시아키 같은 명성이 자자했던
왜군 장수들이 125척의 대 전단으로 연합 함대를 구성하여 
이순신 장군의 조선 해군을 잡기 위해 착착 전투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1592년 6월 14일 부산에 도착한 왜국 3군 연합함대 대장들은
부산 서쪽 90리 근방, 지금의 진해인 웅포에 왜군함대의 본영을
설치하고 제 2군 대장 요시타카가 니혼마루를 기함으로 삼아 42척의
함대를 포진 시키고, 제 1군의 대장 야스하루는 대형전함 7척을
선두로 70여척의 전단으로 역시 웅포에 주둔 시켰습니다.

이 때를 기하여 육군 3만을 이끌고 전라도를 치기위해 달려오던
다카카게는 김시민 장군이 있는 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숨가쁘게
진군해 오고 있었습니다.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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