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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13 고구려는 강력한 힘으로 대륙을 호령하던 민족 7

지난 1976년에 발굴되었던 북한 평남 강서군에 있는 덕흥리 고분은
고구려가 오늘 날 요서(遼西)를 경계로 하는 발해만으로 둘러싸인
요서 지방으로 불려지는 유주(幽州)를 지배했음을 뒷받침 한는
600 여자 분량의 묘지명이 발견되어, 발견 될 당시부터 현재까지
학계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6월 28일 부터 7월 7일까지 지나땅의 장소(江蘇)성
소주(蘇州)에서 열린 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는
북한의 대표로 참석한 문화보존지도국 산하 조선문화보존사인
이기웅 유적실장의 주장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의 주인공인 유주자사 진(鎭)은 고구려 제19대 
태왕 이었던 광개토태왕의 대신이었으며, 그 당시에 지나땅 북부 일대를
차지한 유주(幽州)를 통치한 지방 장관' 이라고 재일본 조선인 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에서 밝혔습니다.

이기웅 실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덕흥리 고분벽화에서는
유주 13군의 태수들이 유주자사 진(鎭)에게 하례 및 정무 보고를 
올리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유주(幽州)땅은 고구려가
지배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북공정에 환장한 지나의 닭머리 학자들은 동천태왕 때인 서기246년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려의 환도 산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을 
근거로 유주는 계속 지나의 통치권이 미쳤다고 반박하였다고 하는군요.
 


이 덕흥리 고분의 축조연대는 영락태왕 18년 서기 408년으로
밝혀졌는데, 지나의 닭머리 학자가 주장하는 동천태왕 때인 246년과는
무려 162년이나 차이가 나고, 그 동안 고구려는 손가락만 빨고 있었는지
162년 전에 관구검인지 관짝검인지 하는 자가 잠시 환도 산성을 함락한 것을
근거로 유주(幽州)땅을 계속 지나가 통치했다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억지 주장 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덕흥리 고분은 지방장관인 자사답게 고구려의 천문학부터 일반 생활상과
군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풍부하게 벽화로 전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 합니다.

지나의 쓰레기 짓거리인 동북공정에 충분하게 제동을 걸만한 이러한
뛰어난 증거들을 통해서 우리도 강력하게 대응해야 되겠습니다.

이미 지나땅에 있는 모든 고구려의 유적은 지나식으로 뒤바뀐지 오래이고
그러한 것을 구경가서 환호하는 얼빠진 대한민국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참으로 통탄을 금할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배운것이 많다면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여 
지나의 동북공정을 강력하게 비판해야 되는 것이며...

배운것이 부족하다면 비열하게 남의 역사를 가로채려는
지나의 수작을 목소리 높여 흉보아야 합니다.

지나땅에 구경가서 지나식으로 뒤바뀐 고구려 유적을 보면서
가슴아파하기는 커녕 멋지다고 탄성만 지르고 오는 얼빠진 후손들을
보는 고구려의 영령들이 과연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Posted by 돈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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